힘없이 순간적으로 무너져가는 인간의 한 생명을 바라보며 생사의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. 아, 그럴 수가... 하나님도! 심장판막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삶의 긴 안목으로 꿈과 비전을 갖고 있었습니다. 그런데 무엇으로, 무슨 이유로,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이해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가 있을까?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영원한 의문이요, 영원한 비밀이 될 것입니다.
정말로 주님께서 그의 생명에 관여하시고 계획하고 계셨는가. 단지 우리의 무리한 생활이요 실수였는가. 사탄의 장난이었는가. 가슴이 답답했습니다. 그가 잠시 누워 “머리가 텅 빈 것 같고 가슴이 답답하다”라는 이 한마디로 마지막 육성을 남겨놓은 채 심장이 멎었음에도, 하나님은 절대로 이 상황 중에 그를 데려가시지 않을 거라는 절대적인 나의 생각이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을 실감할 수 없게 합니다. 그때 스쳐가는 생각은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, 주의 종의 영광, 교회의 영광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. 나로 하여금 영원한 주님의 부끄러움, 부모형 제의 부끄러움과 수치로 그 짐을 더하게 하는 사건이 아닌가. 그의 죽음은 지금 내게 주의 일에 관한 아무런 영향도 일으킬 수가 없었습니다. 혹 그가 살아있다 할지라도 그 일에 큰 지장이 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.
생각하면 부부는 이 땅에서의 위로요, 이 세상에서의 가장 큰 힘이요, 능력입니다. 부모를 섬길 힘도 그가 옆에 있어야 가능했습니다. 더욱이 기도할 능력도 그가 함께 있어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. 꺾일 듯 꺼질 듯한 가냘픈 나의 인생길이 유약하나 큰 그늘이 되어주었던 그를 꺾어버리신 주님의 가혹함은 내게 더 큰 슬픔과 아픔으로 밀려오고 있었습니다.
돌이켜 생각해 보면 못다 한 사랑, 못다 한 관용, 못다 한 인내로 그의 생에 가시 역할이 되었던 나 자신이 그를 여러모로 괴롭혔고 어지간히도 못살게 굴었던 것이 그가 죽은 그날 새벽까지였습니다. 이렇게 짧은 인생이 되려고 그 영적생활에 대한 채찍과 재촉이 불 같았는가? 이러한 여러 가지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슬픔과 눈물을 숨기며 주의 음성을 듣는 중에 수난절 첫 주일을 맞는 주일 새벽,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.
“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...(마 5:18)” 우리의 인생 앞에 요구되는 그 사망의 법(율법) 앞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 호리라도 남김없이 자신을 희생시키신 주님을 뵌 것입니다.
아, 그럴 수가... 하나님도! 내가 무슨 말을 하리오, 무슨 넋두리를 하겠느뇨? 용서하소서! 그 보좌도 그 영광도 송두리째 포기하시고 조롱, 멸시, 천대, 십자가의 부끄러운 수치를 이유 불문하고 모든 인생이 멸망받아 야할 그 과녁 앞에 자신이 몸소 제물 되셨습니다. 주님, 할 말이 없습니다. 더 이상할 말이 없습니다. 지금 주의 뜻을 확실히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지나고 보면 주의 발자국이 내 생애에 함께 그려져 있으리라.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, 교회 앞에, 아무런 공로도 없이 무거운 짐이 되기만 했던 그이였지만 주위 성도들의 뜨거운 사랑과 찬송의 영광 중에 주의 나라로 보내졌음을 감사하며 있는 날 동안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.
삼오날에 가족들과 산에 올라 아벨의 인생을 명상했던 그 은혜로 생의 아무런 열매를 남겨놓은 것 같지 않고 그가 떠났으나 아름다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제물이 영원한 증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.
이지현 한국 거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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