돈을 부리며 살자는 이야기로 한 해를 시작합니다. 돈 얘기는 참 많이 들어본 말이고 참 어려운 말입니다. 나는 평생 물질에 깨끗이 산 사람을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는 주제의 글을 많이 썼습니다만 근래 명예욕에 꽉 잡힌 사람과 비즈니스 수완이 몸에 밴 사람을 보면서 다시 한번 돈에 대한 생각을 해봅니다
돈에 집착하는 상태는 돈에 노예가 된 상태입니다. 돈에 노예가 된다는 말은 돈이 많은 사람에게 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. 사실 돈이란 있는 만큼 쓰면 되는 것이니 잘 생각하면 그해 결 방법은 의외로 쉽고 간단합니다. 엄밀하게 따지면 ‘내가 쓰는 돈만 내 돈’입니다.
명품이나 좋은 차나 좋은 집은 생활에 좀 유용할 뿐, 인격이나 생명이나 인생관에는 깊은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. 그런 의미에서 돈이란 없다고 비굴할 일도 아니고 적다고 투덜 댈 일도 아닙니다. 그 상태 그대로 당당할 일입니다. 물론 물질 시대에 누군들 돈에 대해 자유로울 수가 있겠습니까. 그리고 늙을수록 돈이 중하다는 생각이 드는걸 누군들 철없고 천박하다 꼬집겠습니까. 그러니 돈 앞에 비굴함을 떨쳐버릴 수 있는 용기만이 돈에서 해방되는 길입니다.
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물질, 그걸 지배하려면 나 자신이 거기서 해방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. 돈을 놔버리면 위에서 돈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됩니다. 길에서 우연히 주운 돈뭉치를 경 찰에게 맡기거나 주인에게 돌려준 경험이 있습니까? 그 뿌듯한 기쁨은 운동경기에서 승자의 희열을 능가합니다. 양심이 승리했기 때문입니다. 그 사람은 이미 돈을 지배하며 산 것입니다. 돈의 지배자는 돈 앞에 상관으로 군림합니다. 위에서 돈에 명령하고 위에서 돈을 흔들고 다룹니다. 이런 삶의 소유자는 내 것 없어도 돈을 부리며 사는 것입니다.
나이 들수록 점점 돈보다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낍니다. 돈보다 시간 쓰는 즐거움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지아는 것을 그리 먼 데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. 연로하신 부모님이나 아프신 일가친척, 아니 병원 중환자실, 생명을 잃어가는 호스피스 병동 등 1분 1초가 아깝고 소중한 분들 앞에서 돈이란 얼마나 무력하고 값어치 없는 종이장인지....
결혼반지에 관한 간증으로 글을 맺으려합니 다. 결혼때 시어머님은 분에 넘치는 두 개의 반지를 맞춰주셨습니다. 감사히 받고 소중히 간직했습니다. 그런데 어리고 가난한 목사의 아내인 나는 다이야결혼반지를 곱게 봉투에 넣어 기도와 함께 헌금통에 넣었습니다. 그리고 얼마 후 하 나 남은 블루 사파이어 반지를 유학 준비차 돈이 필요하여 고민하는 남편에게 머리칼을 잘라 파는 심정으로 건넸습니다. 반지가 없어져도 날마다 마음은 천국이고 날마다 행복이 가슴에 차올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습니다.
물질, 결혼반지, 모두 귀하고 소중합니다.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보다, 돈보다, 더 중요하고 더 소중한 것이 있고 더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. 물론 소중함이나 시급함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그 보상은 세월이 지날수록 감히 돈의 가치로는 짐작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보람과 희열이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. 그래서 해마다 자선냄비에 거금을 넣는 손길이 끊이지 않는 것이며 빈민촌과 가난한 이웃에게 전달하는 얼굴 없는 천사들의 거액희사금이 줄을 잇는 것입니다. 그리고 폐품수집으로 모은 돈 전액을 장학금으로 내놓는 것이나 전 재산을 학교에 희사하는 일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뜻있는 삶입니다.
비단 물질 뿐이겠습니까? 외로운 이들에게는 두 손을 꼭 잡아주는 일도, 아픈 이들에게 따끈한 깨죽 한 그릇을 대접하는 일도 돈의 가치를 능가하는 일입니다.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자기의 비밀 경호원의 두 살짜리 아들 패트릭이 백혈병 치료로 머리카락이 다빠지자 자신도 삭발을 하고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휠체어에 앉아 함께 놀았습니다. 가히 돈으로 평가할 수 없는 정말로 닮고 싶은 귀한 모습입니다. 올해는 우리도 돈보다 귀중 한 일에 매료되어 위에서 돈을 부리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.
박명순 재미작가.발행인